“가만히 있으면 시원해져.”라는 부모님의 말씀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가만히 있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여름에 필자를 위로하는 건 역시 시원한 맥주뿐이다. 맥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치킨이 떠오르는 기이한 현상은 우리를 무더운 여름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무더움에 지쳐있던 지난밤, 맥주에 곁들일 안주를 갈구하는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건 다름 아닌 대용량 치킨 윙이었다. 그렇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음식은 바로 닭 날개! 영어로는 치킨 윙! 이다. “자네, 혹시 버팔로윙 이라고 들어는 봤나?“ 치킨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버팔로윙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 역시 드물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버팔로윙은 닭 날개를 굽거나 튀겨 매콤한 소스에 버무리는 양념치킨 정도로 생각을 하는데 이런 버팔로윙은 사실은 한국식으로 변형된 맛이다. 자 그렇다면 오리지널 버팔로윙의 맛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본연의 맛을 기억해보자면 때는 필자의 교환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기롭게 미국을 홀로 여행하던 중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줄기를 맞고 이곳이 버팔로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버팔로? 버팔로윙?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대답에 발걸음은 어느새 버팔로윙을 먹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버팔로윙이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Anchor Bar에 이르렀을 때 어떠한 발상지를 찾은 듯한 가슴의 벅차오름은 아직도 선명하다. Anchor Bar의 분위기는 클래식함 그 자체였다. 흘러가는 시대의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소품들과 진한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출처: The Sismsons그렇다면 어떻게 버팔로윙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게 된 걸까? 잠시 옆길로 새어보자. 버팔로윙은 Anchor Bar의 안방마님 테레사 벨레시모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느 날, 그녀의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놀다 집에 오게 되었고 배가 고프다는 말에 재료를 찾아보지만 남아 있는 것은 닭 날개뿐이었다. 당시에는 닭 날개가 대부분 소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새로운 요리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닭 날개를 구워 카이엔 고추로 만든 매운 소스에 버무리게 되었고 지금의 버팔로윙 이 탄생하게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맛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오리지널 버팔로윙의 맛을 표현하자면 조금은 익숙한 듯 생소하다. 응? 무슨 말이냐고? 우리가 아는 매콤함과 동시에 조금은 낯선 시큼함이 공존하는 맛. 그렇다. 이것은 핫소스다. 피자나 타코에 뿌려 먹는 그 핫소스가 맞다. 치킨과 핫소스?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조합일 수 있지만 일단 한 번 잡숴봐.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딱 버팔로윙이 그렇다. 먹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끌리는 매력이 있다. 버팔로윙에 들어가는 핫소스는 우리가 흔히 아는 타바스코 핫소스가 아닌 카이엔 고추로 만든 루이지애나 스타일의 핫소스다. 카이엔 고추는 중남미에서 주로 재배되며 우리나라의 청양고추 보다 5배 정도 맵다고 보면 된다. 글을 쓰면서도 혀가 얼얼하다. 매운 핫소스만을 묻힌다고 오리지널 버팔로윙 맛이 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핫소스에 정제된 버터를 섞어주어야 하는데 버터는 핫소스에 풍미를 더하고 버팔로윙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버터 역시 항상 옳은 친구이기에 의심하지 말자. 미국 음식에 조연급 치고는 국민배우처럼 등장하는 콤비가 있다. 바로 당근과 샐러리다. 먹기 좋게 잘라 놓은 당근과 샐러리에 블루치즈 또는 렌치 소스를 듬뿍 찍어 입안에 넣는 순간 화룡점정의 뜻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고기와 야채, 매콤함과 상큼함 등 대비되며 서로를 보완해주는 버팔로윙과 당근, 샐러리 조합은 다이어트를 포기하게 하는 주범이 확실하다. 한국에서 미국 본토의 맛을? NEKKID WINGS. 한국에 돌아온 후 오리지널 버팔로윙의 맛이 조금씩 잊혀 갈 때쯤 티비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출연한 윙 전문집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태원에 위치한 네키드윙즈 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mhhy0430) 필자가 유난히 길을 못 찾는 것에 특화되어 있기도 하지만 처음 이곳을 가게 되면 골목을 여러 번 돌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열심히 길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순간 ‘여기가 미국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외국 손님들이 가득하다. 인테리어 역시 인더스트리얼 감성과 함께 절제된 세련미를 느낄 수 있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angelquick 특별한 점은 오리지널 클래식 소스를 포함하여 직접 개발한 소스 15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맛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 마치 ‘자 골라봐. 우린 다 자신 있어’라고 말하는 듯 소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출처: 네이키드 크루 뿐만 아니라 타바스코에 맞서고자 새로운 한국 스타일의 핫소스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국산 홍고추와 청양고추를 통해 만든 ‘진돗개 핫소스’는 와디즈 펀딩 862%를 초과 달성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출처: @min_bymin 가장 중요한 맛. 오리지널 클래식 버팔로윙 역시 필자가 Anchor Bar에서 처음 느꼈던 감동을 잘 재현해주었다. 매콤하면서 신맛이 입을 감싸는 이 맛. 이거다. 이곳은 이미 버팔로다. 앞서 말한 당근과 샐러리 그리고 블루치즈 또는 렌치 소스까지 본토의 구성 그대로였다. 예상과 다르게 필자를 더욱 흥분시킨 것은 대왕 양파링 크로켓이었다. 바삭한 겉을 잘라내면 보들보들한 양파가 그 모습을 수줍게 드러낸다.길을 헤맬지언정, 웨이팅에 지쳐갈지언정 이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웃으며 버티리라. 미국 본토의 맛을 지키며 새롭게 한국의 맛을 만들어가는 네키드윙즈의 행보가 기대된다. 무더운 밤, 잠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에 불러 본 너, 버팔로윙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은 퇴근 후 집에서 날 기다릴 버팔로윙과 맥주 생각으로 가득하다. 무더운 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버팔로윙과 맥주 한 잔 어떨까? 이번 여름도 다이어트는 물 건너갔지만 필자는 행복하다. <뉴욕오리지널 버팔로윙 레시피> <버팔로윙이 더 궁금해? 원조집이야기 Anchor b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