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편의점에서 종종 사먹었던 GS25의 불고기 부리또를 제외하고, 내 인생에서 처음 경험했던 그나마 멕시칸에 가까운 음식은 대학시절 회기동에서 접했던 도스마스(DOS MAS) 부리또였다. 내용물로 쇠고기, 닭고기 혹은 둘의 혼합을 고를 수 있었고, 소스의 맵기, 그리고 감자나 치즈, 소시지 등 추가 토핑까지 선택할 수 있었던 꽤나 부리또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물론 지금와서 도스마스 부리또를 엄격 근엄 진지하게 평가해 보자면 고기에는 우리가 낯설다고 느낄 만한 향신료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고, 토르티야 안 내용물의 절반 이상은 우리에게 친숙한 케찹+마요네즈 조합의 양배추 사라다와 흰 쌀밥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도 초반엔 나름 그 이국적인 맛에 끌려서 자주 찾았지만, 날이 갈수록 역전하는 고기와 쌀밥의 비율을 보며 점차 발길을 끊게 되었다. (진짜 멕시코 음식과 도스마스의 관계는 위 사진이 가장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어설픈 유사 멕시칸 음식과의 조우 이후, 몇 년 후 몇몇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나서야 나름 정통 멕시칸이라고 부를 만한 음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진 왕십리역의 바네스까르네를 시작으로, 이후 무차초, 코레아노스 등 서울에서 이름난 정통 멕시칸을 표방하는 음식점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고소한 옥수수 토르티야로 만든 타코들(내용물보다 토르티야가 기억에 남는다), 엔칠라다, 과카몰리, 타말레스 등등.. 그 중 나는 나름 한국 정통 멕시칸 1세대 식당의 대표격인 ‘바토스’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감자튀김도, 퓨전음식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환장하게 했던 한국-멕시칸 퓨전 감자튀김인 김치 까르니타스 프라이즈다. 심지어 바토스에 너무 빠진 나머지 세계음식축제에서 바토스 부스를 얼쩡거리다가 바토스 창업주인 케니 박(Kenny Park)을 만나 사진도 찍고 팬심 가득한 대화를 했던 기억도 있다. (전설의 레전드 바토스의 김치 까르니타스 프라이즈) (바토스 창업자 케니 팍과 함께, 이때 아부 많이해서 공짜 타코랑 하리토스 엄청 얻어먹음) 조선 신토불이 멕시칸 도스마스부터, 서울의 여러 정통 멕시칸 식당들을 경험했으니 이제 해외의 멕시칸에 도전해 볼 차례였다. 2016년 5주간의 미국 여행 비행기에 오르며 천조국의 온갖 산해진미들을 먹어보겠노라 다짐했고 그 중에는 당연히 타코와 부리또가 포함되어 있었다. 멕시코와 인접해 있어 예로부터 멕시코 이민자들이 많아 도시 자체가 멕시칸 맛집인 샌디에이고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녹진한 타코와 엔칠라다를 맛볼 수 있었고, 친구들과 바에서 술을 마신 후 새벽에 허기진 상태에서 먹었던 LA 타코 트럭의 타코는 환상적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 먹은 타코 사진) (LA 타코 트럭) (LA 타코 트럭에서 먹은 타코랑 부리또) 그러나 현지인 입맛이라 자부하던 내 혀도 나도 모르게 몇 주 동안 건조하고 진한 미국음식에 지쳐갔고, 계속해서 여러 유명 멕시코 음식점들을 다니면서도 머리로는 맛있다 생각했지만 점점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지쳤던 나의 입맛을 리프레쉬해준 또 다른 멕시칸 음식을 만나게 되었으니... 캘멕스(Calmex)의 대표주자, 치폴레(Chipotle)를 만나다. 세상엔 N개국의 중국음식 장르가 있다고 한다. 넓은 대륙 덕택에 중국 안에서도 다양한 음식이 있겠지만, 한국의 짜장면, 일본의 라멘, 미국의 오렌지 치킨처럼 세계 각국에서 중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전래된 중식들의 로컬화 버전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과 멕시코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멕시코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멕시코 음식이 전해지면서, 멕시코에 인접하고 있는 각각 두 거대한 주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 멕시코 음식이 현지화되기 시작했고, 각 앞글자를 따서 전자를 캘멕스(CalMex), 후자를 텍스멕스(TexMex)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멕시코와 국경을 접하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물론 음식은 수학이 아니기 때문에 둘을 이분법처럼 나눌 수는 없다. 같은 멕시코 음식이기도 하고 또 워낙 다양한 버전이 많아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멕시코 음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징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한마디로 가장 큰 특징을 나누자면 캘멕스는 ‘신선함’이라면 텍스멕스는 ‘녹진함’이다. 텍스멕스는 향신료나 소스의 향도 강하고 점성도 더 진하며, 타코 위에 헤비하게 치즈가 뿌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캘멕스는 텍스멕스보다 좀 더 신선한 야채를 풍부하게 쓴다. 때문에 보다 건강한 느낌이 든다. 또 아보카도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주인 캘리포니아답게 캘멕스에선 과카몰 리가 빠지지 않는다. 이밖에도 올리브, 사워크림, 풍부한 마늘향, 바삭한 크리스피 타코 등이 캘멕스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캘멕스의 특징을 모두 뚜렷이 가지고 있는 멕시칸 식당이 내가 미국 여행 중 만난 ‘치폴레’이다. 타코, 부리또, 보울 3가의 형태로 고를 수 있으며 그때그때 내 입맛에 맞게 여러 신선한 재료들을 취사선택해 웬만한 패스트보다도 빠르게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약 10불의 가격에 양까지 많아서 두 끼에 걸쳐 나누어 먹는 경우도 있다. 물가 비싸고 기름진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던 미국에서 맛, 가격, 양, 건강 모두를 충족하는 미친 가성비의 음식이었다. 나는 심지어 귀국 후 무역학과 전공 기말시험에서 치폴레를 한국으로 수입하겠다는 전략까지도 논술했었다(물론 공부 하나도 안하고 갔기 때문에 100% 뇌피셜 전략).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치폴레가 직접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평소 페이스북에서 팔로우하던 외국인들의 서울 식당 정보 공유 그룹인 RBS에서 치폴레와 99% 싱크로 이상의 멕시칸 음식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다.(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바로 그 포스팅) "한국의 치폴레(Chipotle) 쿠차라(CUCHARA)" 쿠차라 이용방법은 치폴레와 똑같다. 부리또/부리또볼/타코/샐러드 4가지로 음식의 유형을 고를 수 있다. 부리또는 토르띠야가 전병처럼 재료를 싸고 있는 형태이고 타코는 우리가 알고있는 그 부채모양 타코이다. 부리또볼과 샐러드의 차이는 부리또볼은 토르띠야가 잘라져 들어가고, 샐러드는 토르띠야가 들어가지 않으며 대신 야채가 더 풍성하게 들어간다. 쿠차라의 주문 가이드 음식 유형을 고른 뒤 쌀/콩->고기/두부->살사소스->추가토핑 등을 고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블랙 터틀빈은 너무 뻑뻑한 느낌이 들어 좋아하지 않고, 현미보리밥과 강낭콩 조합을 좋아한다. 고기 선택지 중 까르니타스와 알파스톨이 낯설 수도 있는데, 까르니타스는 향신료와 함께 장시간 푸욱 끓인 고기를 잘게 찢어놓은 고기로 부드러움과 멕시칸 음식 특유의 향이 특징이다. 그러나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익숙한 향이니 겁내지 말도록 하자. 알빠스톨은 채썬 돼지고기를 철판에 불향이 나도록 지져서 볶아 조리한 방식인데 간이 강한 편은 아니니 알빠스톨을 시켰을 때에는 살사는 조금 더 풍부하게 넣어달라고 하자. 개인적으로 가장 무난하고 대중적이고 또 맛있는(!) 캘멕스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강낭콩-까르니타스-살사 전부다-과카몰+사워크림 테크트리를 추천한다. 단 한 가지 고수가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신선한 토마토 살사의 풍미와 깊게 절여진 까르니타스 돼지고기+신선한 야채들이 입안에 한데 어우러지는 맛이 왜 많은 외국인들이 쿠차라를 그토록 극찬했는지 알게 해 준다.(강낭콩-까르니타스-살사 전부다-과카몰+사워크림 조합샷) 무엇보다 쿠차라의 장점은 맛뿐만 아니라 건강도 잡을 수 있다. 고기 대신 두부류를 선택하면 훌륭한 비건식이 되고, 음식 유형으로 샐러드를 선택한다면 정말 다이어트식 같지 않은 맛의 무탄수화물 다이어트식이 된다. 양도 꽤 많아서 부리또 하나면 성인 남성에게도 꽤 든든한 식사가 된다. 쿠차라는 강남 1호점을 시작으로 합정 메세나폴리스점,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그리고 최근에는 종로에도 4호점을 오픈했다고 한다. 다이어트 중이지만 풍부하고 든든한 식사가 하고 싶을 때, 이국적인 음식을 먹고 싶지만 실패의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 혹은 술먹기 전 위장을 사수해줄 든든한 한 끼가 필요할 때, 아니면 그냥 맛있는게 먹고 싶을 때 쿠차라를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이 어떨까? 분명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모든이의 취향에 맞는 음식은 없겠지만, 내가 아는 모 선배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맛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ㅎㅎ (얼마전 다녀온 쿠차라 강남점 리뷰입니다. > <)쿠차라 주문방법이나 부리또, 타코, 타코볼 리뷰 등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