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열 여섯 나의 전부였던 누군가의 생일날. 한 때 많이 좋아했고 사랑했던 '그'. 하지만 얼룩져버린 추억과 너무 많이 흐른 시간에 무뎌 져버린 그의 생일날, 11월 4일. 바로 빅뱅 탑의 생일이었다. 10년 전에 나는 누구보다 그의 생일을 기뻐하고 축하했을테지만, 이제 그는 저기 마음 한 켠 먼지 쌓인 구석방을 차지하고 있다. (생사여부 확인정도) 직장인이 되어 달력을 보다 문득 알게 된 탑의 생일날, 내 생일은 아니지만 정말 TOP급으로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맛있는 거야 항상 먹고 싶은데, 사실 '현우동' 소개를 위한 빌드업이 길었다. 생일 축하한다 ROTORLDI.. TOP 쉐프가 만드는 맛이 TOP급 음식은 많지만 회사 근처에서 가성비 좋게 즐길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맛의 TOP이라면 미슐랭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슐랭 빕구르망에 선정된 식당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미슐랭 가이드는 음식이 훌륭하여 스타가 부여된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빕 구르망” 명단도 함께 소개한다. “빕”은 미쉐린 그룹의 마스코트인 “비벤덤”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으로, 합리적인 가격대에 좋은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유럽 같은 경우는 약35유로, 미국은 40 달러, 일본은 5,000엔 그리고 한국은 35,000 원 등 구체적인 가격대에 따라 선정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2020년도 빕 구르망 명단엔 총 60개의 식당이 선정됐다. 2019년도 명단에 이름을 올린 61곳 가운데 56곳이 그대로 유지됐다. 여기에 '소이연남마오'(태국 음식) '어메이징 타이'(태국 음식) '정육면체'(면 요리) '현우동'(우동)' 등 4곳이 새롭게 추가됐다. 그런데 명단 속 현우동이, 바로 우리 회사 뒷골목에 있었다. 미레카! 현우동 평소에도 많이 지나다녔었던 골목이었지만 그리 구석도 아니었는데, 맛집인지 몰랐었다. 그도 그럴것이, 생생정보통이나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여타 식당들처럼 요란한 현수막을 세워 두지도, 간판의 크기도 엄청 크지 않았다. 웨이팅이 있긴 했지만 점심시간 피크(12시 정도?) 가 지난 시간이라 그랬던 건지 사람이 붐비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찌됐든, 사무실 이전이 결정되고 며칠 후였어서 최애 음식점들을 몇 번이고 재방문 하던 때였는데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 기뻤다. 장인의 우동향이 느껴진다박상현 셰프의 현우동은 생활의 달인에서 사누키 우동의 달인,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된 맛집이다. (생활의 달인에 소개될 때는 삼전동의 미타우동) 어떻게 우동을 만들면 요리왕 비룡에나 나올법한 우동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는지 신기해 박상현 셰프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다.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이 너무 맛있었던 기억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우동을 요리하게 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우동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의 커리는 화려하고 평범하지 않았다. 군 제대 후 요리학원을 다니다 스승의 권유로 조기 졸업을 하고 호텔로 들어가 좋은 스승님들을 만나 기본기를 탄탄히 다졌고, 세계 3대 요리 학교인 일본 오사카의 츠지 요리학교를 졸업하여 정호영 셰프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다소 늦게 시작해 배운 요리지만 일명 요리 ‘고스펙’을 쌓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을 걸 생각하니, 우동 값이 아깝지 않았다. 우동의 달인의 우동은 어떤 맛일까? 들뜬 마음으로 메뉴판을 펼쳤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우동도 이렇게나 많은 종류가 있었구나. 사실 얼죽아협회 소속인 나는 뜨거운 국물요리를 썩 좋아하지 않아서, 우동이라고는 컵라면 튀김우동, 돈가스 정식에 나오는 미니 우동 정도에도 만족했었다. (부끄)누구나 아는 흔한 맛에 익숙했던 나는 우동의 달인이 만드는 색다른 우동을 맛보기 위해 제일 비싼 멘타이가마 버터우동을 주문했다. 메뉴명 아래 부연설명을 보니 계란, 버터, 명란이 들어간 우동은 과연 어떤 맛을 낼 지 궁금하기도 했고, 수요 미식회에 소개된 메뉴이기도 해서 주문했다. 멘타이가마는 ‘갓 삶아낸 우동 면발에 명란젓과 계란 그리고 간장소스를 넣고 비벼 먹는 우동’이라는 뜻으로 내가 주문한 우동은 멘타이가마 뒤에 버터가 붙으니 말그대로 버터가 들어가 있는 우동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우동 식당에서도 버터없이 명란, 계란, 간장만으로 맛을 내는 심플한 비주얼의 멘타이가마를 찾아 볼 수 있다. 잉크도 안말랐을 따끈따끈 2020 미슐랭!점심시간에 팀원들과 함께 갔는데, 만석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먼 발치서 확대하여 찍어보았다. 예쁜 색감의 멘타이가마 버터우동명란의 붉은 색, 파의 초록색, 계란의 노란색까지 예쁜 색감의 멘타이가마 버터우동은 보기만해도 재료의 신선함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비리진 않을까?’ 했던 걱정을 후다닥 접게 만드는 그런 신선함이 보였다. 먹어 보기 전에도 면발의 탱글함이 느껴졌고, 계란도 싱싱해 보여서 비비기 전부터 군침이 절로 돌았다. 다 헤집어 놓기 아까운 비비기 전 멘타이가마 버터우동!맛없어 보이는 건 기분탓사진으로 보았을 때 비주얼은 다소 맛없어 보일 수 있어도 사진을 못 찍은 내탓이지, 비비면서도 얼른 맛 보고싶어 혼났다. 계란과 버터, 명란이 어우러지면서 꾸덕해지는 느낌과 함께 식빵에 달라붙는 딸기잼 마냥 면발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찾아가는 재료들. 마치 멘야하나비의 마제소바를 비비는 것 같았다. 첫 입 먹자 마자 입맛을 확 돋우면서 면발의 쫄깃+탱글함이 혀로 전해지고 그 사이를 채우는 노른자, 명란, 버터의 조금 짭조름하지만 부드러운 고소함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마제소바와는 아주 다른 맛이지만 마제소바를 처음 먹어보았을 때처럼, 각 기 다른 재료들이 섞여 내는 새로운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맛의 신선함이 중독적이었다. 끝 맛은 슴슴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한 번 더, 한 번 더하게 되는 그런 맛이었다. 강렬하지 않고 차분한 우동 면발이 입 안 가득 미끈하고 탱글탱글하게 착착 감기는 느낌. 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쯔란과 시치미 같은 시즈닝류를 좋아하는 나는 옆에 작은 통에 담겨있던 시치미도 뿌려 먹어 보았다. 시치미가 담긴 통시치미를 뿌린 버터우동아주 조금 매콤한 맛이 가미되면서 먹다 보면 질릴 수 있는 맛을 확 잡아주었다. 게다가 계란+명란+버터 소스에 면발이 젖었지만 유부튀김 부스러기들은 바삭함을 잃지 않고 제 역할을 다 해주었다. 코로롱 때문에 하나 둘 문을 닫는 단골 가게들이 속출하던 와중 최애음식점을 잃어 속상해하던 나에게 점심시간의 만족감을 되찾게 해준 현우동... 점심을 함께 먹은 모든 팀원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이래서 ‘미슐랭 미슐랭 하는구나.’ 우동. 추운 날 입김처럼 그릇 위로 올라오는 뜨끈한 국물의 김이 그 자체로 겨울인 음식. 현우동에서 아는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맛있는 것 같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현우동에서 우동 달인의 살아있는 면발과 알지못했던 새로운 우동으로 진한 겨울을 한 젓가락 맛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