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우산에 부딪히는 빗물 소리가 들린다. 아니, 비 오는 날 도로 위 차 막히는 소리가 들린다. 요 며칠 새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비를 보고 날씨처럼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갑자기 비가 오다가 다시 쨍해지는 하늘은 기껏 들고 나온 우산을 애석하게 바라보게 하고, 그렇게 제멋대로인 날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정확히는 ‘제멋대로 살면서 플렉스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지난 달에는 옷으로 플렉스를 했으니 이번 달에는 월드킷 크루답게 음식으로 플렉스를 해봐야겠다. ‘푸드 플렉스’라 함은, 아무래도 먹고 싶은 메뉴를 맘껏 시키고 모두 맛보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내가 돈을 버는 이유이자 어른스러운(?) 소비의 시작. 여행지를 고를 때에도 돈은 펑펑 쓰고 싶은데 너무 물가가 비싼 곳은 아닌, 그렇다고 별 볼일 없지 않은 그런 곳을 찾게 되는 것처럼 가성비는 따지되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은 나는 베트남을 떠올렸다. 습기 주겨버려 갈수록 습해지는 날씨를 타파하기보다 정면승부하자. 이습치습, 베트남! 그럼 오늘 점심은 베트남 음식이고, 이 음식점을 낮과 밤 둘 다 가보기로 했다. 낮과 밤 둘 다 가서 먹고 싶은 메뉴를 다 먹어보기로. 이름하야, 베트남 데이앤나잇! ‘신사쌀국수’ 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에머이, 분짜라붐, 콴안다오, 포메인, 리틀 사이공 중 콴안다오를 선택했다. 점심을 거리로 따지지 않는 월드킷크루이지만 비 오는 날은 가까운 게 최고다. 콴 안 다 오 오 픈 대문짝만 한 간판에도 불구하고 골목 구석에, 정말 구석에 있어서 지나치기 쉽다. 테이블이 테라스에도 있고 실내에도 있는데 테라스를 추천한다. 느껴지는 비엣남의 기운 옆을 돌아봤을 때 착석 했을 때 가게 전경을 찍고 싶었는데 맘처럼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다. 콴안다오는 가격 빼고 분위기, 종업원분들과 음식은 로컬 그 자체이다. (종업원분들 모두 베트남 분들이시고 셰프도 베트남 출신이라고 한다.) 조금은 서툰 한국말로 안내해 주시는데, 정말 친절하시다! 이 세상에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며 콴안다오의 bgm을 듣다 보면 정말 빨리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이름 모를 미지근한 차와 함께 이 날은 점심시간에 사무실 식구들이 몇 없어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우리 팀 촬영 피디님과 둘이서 점심을 먹었다. 어색했지만 회사 이야기를 하며 조금 더 친해졌다. (인간은 싫어하는 것을 공유할 때 더 가까워지는 사이언스) 둘이서 먹는 거였지만 법카를 맘껏 쓸 이런 기회는 또 없다며 분짜, 퍼보(소고기 쌀국수), 껌승(숯불구이 돼지고기 덮밥)을 주문했다. 헥ㅎ헥 전 메뉴 풀샷 쌀국수 종류는 호치민식, 하노이식으로 구분된다. 호치민식 쌀국수는 생숙주와 향신료, 라임 또는 레몬을 뿌려 먹고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하노이식 쌀국수는 숯불구이 고기와 야채를 넣어서 먹으며 진한 육수가 특징이다. 콴안다오에는 세 가지 종류의 쌀국수가 있다. 소고기 쌀국수 퍼보, 호치민식 쌀국수 호 띠우, 똠양 쌀국수 분 깐 조. 나는 음식에 있어 큰 도전을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무난한 퍼보를 주문했다. 컴온 클로저 사실 평소에 쌀국수를 즐겨먹는 편이 아니라 도전을 하지 않은 것도 있다. 쌀국수를 즐겨먹지 않는 이유는 고수 향이나 베트남 음식만이 가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사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미 한 젓가락 후다닥 해치웠다. 그만큼 무난하고 어렵지 않은 맛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그런 쌀국수는 아니다. 분명 깊은 맛은 있는데, 달짝지근함도 같이 있어서 오호 요놈 봐라? 하고 눈이 떠지는 맛. 더운 날씨에도 뜨끈한 국물에 자꾸 손이 가는 중독성 있는 맛. 그렇게 또 들이키다 보면 결국 아우 시~~~~~~~원허다! 라고 해버리는 아이러니한 쌀국수다. 콴안다오에서 처음 먹어 본 껌승! 분짜를 먹을 때 항상 고기의 양이 비례하지 않아 아쉬웠다면 분짜를 두 개 주문하는 것보다 껌승 주문을 추천한다. 껌승은 사진처럼 계란 프라이를 얹은 밥이 같이 나온다. 함께 나온 숯불 돼지고기가 식기 전에 반숙 계란 프라이와 밥 한 숟가락을 떠 고기를 느억맘 소스에 콕 찍어 같이 먹으면 이 세상 고소함이 아니다. 숯불구이라 그런지 첫 맛은 불향이 확 잡고, 계란의 고소함이 씹을수록 극대화되면서 곁들여진 마늘 후레이크로 식감도 살린다. 계란이 들어간 요리를 먹을 때마다 고소하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데, 진짜 고소한 걸 억덕계...! 하지만 여태까지 먹었던 고소한 계란 맛은 껌승이 최고였다. 숯불구이의 불맛, 계란의 고소함 이 둘이서 어떤 것도 하나 나 잘났다고 싸우지 않는 죽마고우 패트와 매트 느낌. (어쨌든 조화롭다는 말)이렇게 세 가지의 메뉴를 다 해치운 나와 피디님. 반미를 꼭 먹고 싶었는데, 재료가 다 떨어져 오후에 가능하다고 해서 그럼 저녁에 꼭 다시 와야겠단 다짐과 함께 그땐 스프링롤도 박살내야지 했다. 같은 날에 두 번 가는 건 조금 부끄러워서 며칠 뒤 저녁,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찾았다. 점심시간과는 다르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보았다. 저녁시간보다 점심시간에 사람이 더 많은 편이다. 사진처럼 프라이빗 한 느낌이 있어서 앉아보고 싶었는데, 바람이 안 들어서 조금 더웠다. 리얼 베트남 체험; 쌀국수도 시킬걸... 저녁에는 스프링롤, 분짜, 반미, 껌승을 주문했다. 다들 퇴근 후에 만난 거라 배가 무척 고팠던 상태였는데도 사진 찍어야 하는 나를 기다려주어서 고마웠다. Em yêu anh♥ 나의 최애~ 사실 나의 최애는 분짜. 그래서 낮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었다. 그런데 나올 때마다 허겁지겁 먹는 바람에 예쁘게 나온 사진이 별로 없다. 분짜의 ‘분’은 쌀국수를 ‘짜’는 돼지고기를 뜻한다. 콴안다오의 분짜에는 각종 채소와 땅콩, 마늘 후레이크, 숯불구이 돼지고기, 고수가 들어간 튀긴 스프링롤, 쌀국수 면이 들어있다. 욤뇸뇸 느억맘 소스를 앞접시에 조금 덜어서 부어 먹었다. 사실 분짜의 맛은 느억맘이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콴안다오의 느억맘은 최고다.(으으 이런 식상한 표현을 쓰면 재철크루가 놀릴 텐데 이 표현밖에 없는 걸) 다른 베트남 음식점에 비해 상큼, 새콤한 맛이 더 하고 단 맛도 조금 있다. 퍼보와는 다른 느낌으로 중독적인 맛. 다른 음식들을 먹다가도 분짜를 먹으면 군침이 다시 돌고 새콤한 맛이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느낌이라 과장하자면 개운하기까지 한 맛이다. 헥ㄱㄱ헿ㄱ겍헥 배고픔에 반 미친 상태에서 엄청나게 먹고 싶었던 반미에게 돌진. 내가 싫어하는 고수가 잔뜩 들어있지만 웬일로 고수 맛이 강하지 않았다. 반 미친 상태여서 그런가..? 정말 기대하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빵 안이 부실했다. 들어가는 재료의 종류야 원래 그렇다 쳐도 양이 조금은 부족했던 느낌. 더군다나 바게트 빵이 너무 질겨서 안에 씹을 때마다 재료가 후드득 떨어졌다.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안에 발린 소스는 살짝 유자 맛이 나는 듯했는데, 강하진 않았다. 고이 꾸온 스프링롤은 중국에서 봄에 열리는 신년 행사인 춘절에서 먹었던 음식으로, 봄=스프링이여서 스프링롤이라고 부른다. 얇고 엄청나게 쫀득한 라이스페이퍼가 입안을 감싸고 세상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가 주말농장을 한 입 베어 문 느낌이다. (맛 표현에 한계가 왔다) 여기 까지가 땅콩소스 없이 스프링롤만 맛보았을 때이고 땅콩 소스를 찍어 먹으면 당연히 훨씬 더 맛있다. 마라탕 편에서도(마라탕 편 링크) 말했듯이 나는 땅콩 맛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스프링롤에 듬뿍듬뿍 찍어 먹었다. 땅콩 소스는 땅콩 잼을 그대로 녹인 맛이라기보다 조금 덜 가공된 생땅콩(?)의 맛이었다. 엄청 배가 고파서 10분 컷으로 음식을 마셔버렸다. 함께 온 사람들과 ‘오늘은 꼭 술 마시지 말자.‘ 약속했는데 밥을 10분 만에 다 먹고 나니 아쉬워졌다. 역시 식사든 글이든 뭐든 마무리가 어렵다. 반전으로 우린 한강에 가서 커피를 마셨고, 더 반전으로 나는 베트남에 가본 적이 없다. 프랜차이즈의 다 똑같은 베트남 음식에 지쳤다면, 합리적인 가격에 반전 있는 맛을 선사하는 콴안다오에 가보자. 으 역시 마무리가 제일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