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성공했다고 느낄까? 물론 나는 아직 성공 못했다(…) 그러나 꼭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성공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의 소소한 성취나 성장을 발견하며 나 자신에게 괜스레 뿌듯하고 대견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남들이 말하는 ‘큰 성공’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우리 삶 속의 ‘작은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를테면 수능이 끝나고 알바를 시작해 받은 첫 월급으로 부모님의 선물을 샀을 때, 내가 크면 통일이 되어 나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2년간의 국방의 의무를 끝마쳤을 때, 차를 운전하는 나를 볼 때, 혹은 취업 후 학생시절 벌벌 떨며 시켰던 음식들을 아무렇지 않게 시키고 있는 나를 보았을 때, 이런 순간들이 나에게는 작은 성공의 순간들이었다. 특히 내 자신에게 작은 사치스러운 선물(물건이든 음식이든)을 줄 때 나의 성공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더 크게 들었는데, ‘내가 이만큼 컸구나’라는 작은 성공에 대한 성취감과 동시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큰 성공에 대한 열망과 동기부여였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을 그만둔 백수의 상태이기에(…) 내가 나에게 그딴 선물을 줄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내 뇌피셜 속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도중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친구가 내 생일의 달을 맞아 선물 및 축하 겸 ‘한우 오마카세’를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역시 명문대를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해 예쁜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탈모까지 있는 성공한 친구를 두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본래 오마카세란 ‘맡긴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손님이 요리사에게 메뉴 선택을 온전히 맡기고 요리사는 가장 신선한 식재료로 최상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뜻하며 주로 스시야에서 쓰이던 방식이었다. 지금은 그 개념이 점차 확장되어 스시가 아니더라도 고급 식재료를 다루는 가게에도 번지기 시작했고, 몇 년 전부터 한우에도 적용되어 모퉁이우, W가나, 비플리끄 등의 식당이 유명해지고 ‘한우 오마카세’라는 장르가 유행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우월(WOOWOL)’이라는 곳으로, 타 오마카세보다 한우를 이용한 한식 요리를 다양하게 활용해 차별성을 둔 가게다. 게다가 일반적 한우 오마카세의 가격은 보통 인당 20만원이 훌쩍 넘는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우월은 인당 14만원의 가격으로 그에 못지 않은 맛을 내는 이른바 ‘가성비 한우 오마카세’로 잘 알려져 있는 가게다. 유명한 가게다 보니 예약 날짜도 잡기 힘들어서 약 한달 정도의 여유를 두고 예약하는 것을 권장한다. 노쇼를 방지하기 위한 예약금도 있다. 사실 모든 예약 과정은 내 친구가 진행했기 때문에 난 잘 모른다(...) 방문 전 꼭 전화해 보시기를. 무튼 마침내 예약한 날짜가 되고, 친구 커플과 함께 우월이 있는 청담동에 도착했다. 나름 서울에 있는 학교랑 직장도 다녀봐서 서울에 친숙한 경기도민이라고 느꼈지만, 뭔가 청담동만이 주는 그 분위기는 굉장히 낯설었다(이런거 느끼면 촌놈). 예약한 6시까지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다, 6시 조금 전에 우월로 향했다. 전경은 대략 이렇게 생겼고, 저 닫혀있는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된다. 내려가는 계단도 각종 그림들로 분위기 있게 꾸며져 있었는데, 마치 지하 비밀 사교 파티에 초대된 느낌이 들었다. 원래 막 이런 컨셉 상상해야 두근거리고 재밌음. 우리 테이블은 칸막이로 나누어진, 약간 절반정도 열린(?) 룸은 아니지만 룸 같은 공간이었고, 테이블과 화로가 붙어있는 구조였다. 저 화로에서 셰프님이 고기를 우리 눈 앞에서 직접 구워 주신다. 각자 자리 세팅이다. 왼쪽 위부터 생 와사비, 갓김치, 고들빼기, 쪽파 장아찌이다. 평범해 보이는 찬이지만 각 김치들이 개성이 남달라서, 고기와 곁들여먹기도 좋았고, 고기가 익기를 기다릴 때에도 알콜을 끝없이 흡입하는 나의 훌륭한 와인 안주가 되어주었다… 접시 위 세 가지 소금은 왼쪽부터 히말라야 핑크솔트, 갈릭솔트, 애플칩프로 훈연한 소금이다. 사실 히말라야 핑크솔트와 갈릭솔트는 이전에 먹어본 적이 있어서 감흥이 덜했는데, 저 애플칩으로 훈연한 소금이 정말 대박이었다. 나는 고기를 소금을 그다지 많이 찍는 편이 아닌데, 저 소금은 정말 몇 알갱이만 찍었는데도 입 안에 훈연향이 강하게 퍼져서 깜짝 놀랐다! 오늘 준비한 고기부터 보시죠(육식맨 버전). 안심, 채끝등심, 안심추리, 살치살, 늑간살이다. 각 고기에 대한 설명은 이후 개별적으로 설명하겠다. 우월은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에 한해 콜키지 프리이기 때문에, 근처 와인샵에서 레드와인을 한병 사서 갔다. 그리고 잘 보면 와인 뒤에 작은 소고기 인형이 있는데, 뼈와 피부가 벗겨진 형상에 고기가 나올때마다 부위를 저 인형을 통해 설명해주셔서 뭔가 무서웠다… 쨌든 우리가 샀던 와인은 날리헤드 1924 더블블랙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캘리포니아 산 와인인데, 단맛정도도 알맞고 바디감도 풍부해서 소고기와 매우 잘 어울렸다. 가성비도 좋았다. 한병 더 살걸… Fire ON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이거 정말 상큼하고 맛있었다. 기본적으로 동치미 베이스 국물에, 아래에는 시금치로 색을 낸 초록색 면, 위에는 우둔살 육회, 양파와 깻잎으로 마무리했다. 애피타이저부터 우월의 특색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소고기를 활용해 정말 한식의 맛과 향을 잘 살린다는 점이다. 특히 채소를 이용한 향을 정말 잘 쓰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요리가 다 향긋했다. 첫 번째 고기인 안심 올라갔다. 모든 고기를 굽고 난 뒤 내부 온도를 저렇게 온도계로 확인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익힘 정도로 내어 주신다. 고기가 다 구워지면 바로 서빙하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그릴 옆 통에 어느 정도의 레스팅을 거친다. 심지어 비교적 얇게 잘라진 양념 늑간살도 꼭 레스팅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레스팅이 끝나면 인원에 맞게 알맞게 커팅해 주시는데 이때가 가장 애가 타는 순간이다.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커팅했을 때 나오는 고기 내부의 핑크 그라데이션 육색을 보면, ‘셰프님 빨리요….’라는 소리가 거의 목구멍까지 튀어나온다. 첫번째 고기인 안심이다. 무려 28일간이나 숙성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육향이 대단했다. 안심은 히말라야 핑크 솔트에 찍어 먹는것이 좋다고 하셨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고 부드러워 첫 고기로 좋았다. 참고로 미리 말하자면 여기서 먹었던 모든 고기는 내 인생고기였고 그만큼 환상적이었다. 나의 표현력으로는 이 맛을 표현할 길이 없어 미리 밝혀둔다. 진짜 진심으로 맛있다. 등심 부분 중 하나인 채끝 등심이다. 소를 채찍으로 몰 때 채찍이 닿는 부위라 하여 채끝등심이라 한다. 안심의 담백함도 좋았지만, 역시 고기는 지방이 어느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기의 결을 씹을 때 고소한 육즙이 폭발하는데 정말.. 절반은 갈릭솔트에, 나머지 절반은 와사비와 함께 먹어 두 가지 맛을 즐겼다. 기름진 부위인 채끝 이후에 입을 씻을 수 있게 나온 샐러드이다. 엔다이프 위 파프리카, 깻잎과 함께 버무려진 것이 삼채라는 채소인데, 3가지 맛을 내는 채소라 해서 삼채라 이름 붙여졌다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씹으면 씹을수록 향긋함이 입에 퍼져 입에 남아있는 기름기를 정말 상쾌하게 씻어주는 느낌이다. 이 다음은 안심추리라고 하는 부위이다. 왜 안심추리 직전에 입을 씻을 수 있는 샐러드를 주셨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위였다. 안심추리는 안심 근처 부위로 소 한마리를 잡을때 마다 서너점밖에 나오지 않는 부위라고 하는데, 그 자체로서의 감칠맛도 대단하고 약간의 스지(힘줄) 부분도 있어 식감도 재미있는 부위였다. 그리고 또 화룡점정이 있었으니.. 우리가 너무 맛있게 먹는다고 이탈리아에서 공수하신 블랙 트러플을 올려주셨다!! 사실 살면서 트러플 오일 뿌린 것만 먹어보고 진짜 트러플 버섯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 사진 그대로 숟가락에 조심조심 옮겨 입안에 온전히 넣었다. 이거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99년 빙그레 이글스가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맛? 가지튀김스프이다. 아래에는 목이버섯 스프, 위에는 튀긴 가지가 올려져 있다. 튀김 안에 단순히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위의 채썬 고기들이 들어있는데, 가지라는 음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열 수 있는 요리였다. 기존 맛없는 채소로 인식되던 가지가 지삼선이나 가지튀김을 통해 인식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이 요리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바삭한 튀김옷을 느낀 뒤 계속 씹으면 안에 가지의 채즙과 고기의 육즙이 섞여 입안을 가득 채우면서 어우러지는데 입 안에서 또다른 요리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먹을 소고기 중 가장 기름진 부위, 살치살이다. 반으로 잘라 하나는 애플침 훈연 소금과, 나머지는 와사비와 먹었다. 하나 더 달라고 하고 싶은 맛이었다. 가장 기름진 만큼 우리가 기대하는 그 한우의 맛에 가장 부합하는 맛이었다. 그리고 이 고사리 파스타는, 한식-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을 따로 내서 이걸 시그니쳐 메뉴로 한다고 해도 단숨에 블루리본과 미슐랭 별을 획득할 만큼의 맛이었다. 접시 아래부터 올리브유, 파스타면, 볶은 고사리+그라나 파다노 치즈, 가니쉬로 참나물 순으로 올려져 있고 그 옆에 시래기 장아찌와 함께 플레이팅 되어 있다. 원래 고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올리브유와 그라나 파다노 치즈와 고사리 향이 정말 잘 어울렸다.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맛을 참나물로 허브향을 더해 상쇄시켰고, 새콤하고 깔끔한 시래기 장아찌로 깨끗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마지막 고기는 역시 양념으로 하는 게 국룰이다. 그리고 양념고기의 끝은 뭐다? 바로 갈비(늑간살)다. 셰프님께서 갈비를 그릴 위에서 굽는 동안 연신 양념을 계속 덧바르며 정성스럽게 구워 주셨다. 깻잎과 함께 먹기를 권하셨고, 역시. 고기 본연의 맛을 해치치 않는 갈비양념의 단맛+기름지고 고소한 갈비살+상큼한 깻잎의 조화. 게임 셋이었다ㅠㅠ 이제 식사 차례. 그런데 밥의 비주얼이 심상치 않다. 밥 위에 가쓰오부시, 능이버섯, 백목이버섯이 올려져 있고 한번 버터로 살짝 볶았다고 하는데, 간이 세지 않으면서도 각 재료들의 향이 어울러져 향긋함과 감칠맛이 폭발한 밥이었다. 밥을 오픈하자마자 가쓰오부시가 흩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각자 밥을 나누어 주신다. 밥과 같이 먹을 한우 육개장이다. 나오는 음식마다 너무 맛있다고 해서 과장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고기도 듬뿍 들어가있는데다가 평소에 먹었던 소고기국의 맛이 아니다. 일반 육개장이나 소고기국이 아메리카노라면 이것 에스프레소 정도..? 최소 2~3배는 농축한 맛이 났다. 마지막은 망고 단호박 빙수였다. 단순 얼음에 망고, 연유, 대추, 떡, 단호박 페이스트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 단호박 페이스트가 단연 압권이었다. 원래 빙수랑 단호박 둘 다 좋아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달콤하고 향긋하게 재료의 장점만을 살려 주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약 한시간 반의 호화스러운 식사 동안, 나오는 한점 한점의 요리가 우리 혀의 경험치와 한계를초과할수록, 그 맛을 즐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는 성공을 다짐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이 식사가 그렇게 사치스러운 식사가 아닐 수도 있고, 또 말 그대로 ‘가성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식사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살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의 식사였고, 앞으로 이런 식사를 더 자주 먹고, 자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미래의 더 큰 성공’에 대한 자극제였다. 그리고 그 자극제가 꼭 비쌀 필요는 없다. 나도 어쩌다 친구의 호의로 운이 좋게 가게 된 것일 뿐, 일상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힘을 낸다. 스트레스 받을 땐 불냉면, 영혼이 허기질 땐 순댓국밥, 초심을 다질 땐 라면 등, 오늘도 더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음식을 게임 속의 포션처럼 이용한다. 나중에 꼭 성공해서 비싼 음식들도 많이 먹고 주위 사람들과 나누며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글을 빌어 멋진 식사를 제공해준 내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나를 포함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 파이팅이다.